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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2)-교육대학교


 하얀 눈이 내리던 1월의 어느 멋진 날, 3년간 입었던 나의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교육대학교 면접장에 갔다. 내가 거의 뒷번호였다. 건물은 고등학교 건물이랑 거의 비슷했다. 살짝 우중충하고 낡아 보였다. 면접 대기실에 앉아있는 다른 학생들을 보았는데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두께가 족히 5cm는 되어 보이는 책들을 다 옆구리에 한 두 개씩 끼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제본을 뜬 교재도 보였고, 문제집 같은 것도 보였다. 다들 어디서 그렇게 교재를 구했는지 배신감마저 들었다. 내가 준비한 것은 교육대학교 홈페이지에 있던 기출문제와 신문 기사 스크랩트를 몇 개 이어 붙인 4~5장짜리 A4용지가 전부였다. 뒷번호라 그런지 시간이 꽤 걸렸다. 교수님 세 분이 앉아 계셨고 씩씩하게 인사하고 들어갔다. 오전부터 면접이 시작되었는데 내가 들어간 시간은 오후 2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교수님들께서는 많이 지쳐 보이셨다. 두 가지 질문이 면접의 주를 이루었다. 첫 번째 질문은 면접 전 대기실에서 5지선다형으로 뽑은 제비뽑기 문제였다. 내가 뽑은 문제는 '인터넷 실명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찬성한다고 주장을 펼쳤다. 이어서 교수님이 직접 제출하는 문제가 나왔다. '영어 수업 시수 확대에 따른 다양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책을 각각 제시하시오.' 난생처음 생각해본 문제였다. 초등학교에서 영어 수업 시수가 증가한다는 것도 몰랐다. 대충 문제의 분위기는 파악했는데 이걸 순간적으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1분 정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답변했다. '영어 수업 시수가 증가함에 따라 다른 과목에 대한 시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국어 기능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영어 시수가 증대됨에 따라 국어 수업 시수도 증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글로 써서 정리가 되지만 당시에는 아찔했던 기억이다. 그래도 전혀 엉뚱한 소리는 안 해서 교육대학교에 붙지 않았나 생각한다.

 

 합격 통보를 받고 고향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교육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부모님을 떠나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되었다. 학교로 가지 않고 기숙사로 가게 되었다. 교육대학교 특성상 남학생의 비율이 적어서 웬만하면 남학생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교에 남자 기숙사가 신축으로 지어졌는데 침대 포장지도 뜯지 않은 그야말로 새 건물에 들어가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기숙사 사감이라는 형들이 앞에서 명부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내가 과와 학번을 말하니 '어, 우리 과 새내기네.' 하며 3~4명의 형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일단 처음 간 곳이니 깍듯하게 인사하고 방을 안내받았다. 형들이 말하길 같은 방 쓰는 선배가 술을 워낙 좋아해서 아마 술 많이 마셔야 할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학교의 입학식보다 새내기 OT가 먼저 시작되었다. 1학년이라는 단어보다 '새내기'라는 단어를 더 많이 듣게 되는 시기였다. 다양한 활동과 공연, 술자리가 이어지는 자리였다. 부어라 마셔라 아주 끝장을 볼 줄 알았지만, 교육대학교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있어서인지 술 권하는 것도 많이 않았다. 내가 주변에서 들은 대학 술 문화와 비교하자면 상당히 점잖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육대학교는 1~3학년까지 수업의 70% 정도는 시간표가 정해져서 나온다. 9시부터 5시까지 거의 수업이 꽉 차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학기당 그저 1~2개의 교양 과목만 다르다고 보면 된다. 고등학교 특별활동 시간과 느낌이 비슷하다. 그래서 교육대학교 1학년은 고등학교 4학년이라는 표현도 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학과의 의미가 굉장히 약하다는 점이다. 당연히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에 학과 조직의 성격과 문화, 전통에 따라 학교 내의 평판 등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순전히 교육과정 이수의 측면에서 보자면 교육대학교의 학과는 졸업 전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교직 사회에 10%도 되지 않는 영향이 있다고 여겨도 무방하다. 이처럼 교육대학교의 학과 개념은 고등학교의 반 개념과 흡사하다고 생각하면 좋다. 

 

 1학년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점은 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반복하는 기분이었다. 실제 수업 내용들도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한 번 복습하는 내용들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교육학에 관한 기본 강의가 일부 있었다. 그러나 수업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고, 3월 한 달은 새내기 문화제 준비로 춤 연습만 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 느낀 가장 큰 점은 자유가 주어지는 것에 비례해서 책임이 커진다는 것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수업에 나가지 않아도 그 누구도 나를 깨워주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되면 급식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먹어야 했다. 강의와 강의 사이에 쉬는 시간인 공강이 있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정해야 했다. 자유와 책임을 뼈저리게 알아 간 시간들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첫 시험을 치렀다. 자유라는 권리만 누렸으니 성적은 처참했다. 학사경고를 받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근데 성적이 별로 안 좋아도 마냥 좋았다. 대학가의 여름은 너무나 푸르렀고, 생기 넘쳤다. 방학이 너무 일찍 시작되고 너무 길어서 충격적이었다. 시험 치는 날이 학과 종료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굉장히 생소했다. 6월 초 유난히 싱그러웠던 여름 햇살이 기억난다. 그리고 가는 청춘이 아까워 미처 잠들지 못했던 시원한 밤공기들, 대화들, 추억들이 아직도 증강현실처럼 생생하다. 그렇게 9월까지 바쁜(?) 방학을 보내고 2학기에 접어들어 아직 다 적응하지 못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교육대학교에는 '교생실습'이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2학년 때 1주 참관수업, 3학년 때 3주, 4학년 때 4주 실습을 했다. 첫 교생 실습이 시작되었다. 저마다 정장 한 벌을 사서 배정된 학교로 갔다. 4월로 기억한다. 2학년 실습은 참관수업이다. 말 그대로 구경만 하면 됐다. 물론 수업을 참관하고 참관록을 작성하거나 수업계획서를 간단하게 작성해보는 활동은 있었다. 내가 교사의 꿈을 품은 것은 2학년 실습 때부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전까지 솔직히 교육대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교사에 대한 꿈이 없었을뿐더러 학과 과정도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교수님들의 교수방법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적 동기가 없음에 대한 한탄이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 막상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대면하고, 수업 현장을 목격하니 이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자 새로운 초대였다. 아이들과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평화가 있다. 그 평화를 경험하니 마음이 설렜다. 비록 수업 40분짜리 수업 한 교시였지만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었고, 그 만남에는 특유의 떨림이 있었다. 또한 학생 교육을 향한 실습학교 선생님들의 열정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었다. 비로소 2학년이 되어서 '교사'라는 뜻을 품을 수 있었다.

 

 3학년은 [사망년]이라고 불린다. 각종 조별과제와 전공 과제가 무수히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교생 실습에 나아가 직접 '수업'을 하는 수업시연 활동도 있다. 3학년이 너무나 힘든 이유는 4학년 때에는 수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4학년 때 해야 하는 수업을 아마 3학년 때 몰아서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교육대학교는 모든 커리큘럼이 4학년을 중심으로 짜이는 듯했다. 외부 강의와 각종 세미나가 많이 열리는데 이때에도 주로 4학년 임용고시를 위한 명목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4학년 때 들었던 수업이 가장 재미있고 가장 유익했다. 한 주에 1~2개 과목만 들으면 되었는데 부담이 적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전. 현직 교사 출신 강사 교수진이 주로 수업을 맡기 때문에 현장감 있고 생생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장감이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1년 뒤 교직에 나아가야 할 것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매 순간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임용고시를 위한 준비는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떤 인터넷 강의를 들을 것인가, 어떤 교재로 임용고시를 준비할 것인가. 거의 한 달 동안은 낯선 임용고시와 친해지기 위해 씨름한다. 어떤 스터디 그룹을 만들 것인가, 지역은 어디서 쓸 것인가, 혹은 도서관 눈치싸움 등 본격적으로 임용고시 모드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강한 모순을 느꼈다. 공교육을 책임질 일선의 교사를 양성하는 시험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교육이었다. 교육과정에 관해 인터넷 강의나 저자 직강을 듣기도 했는데 임용고시의 기본이 되는 이러한 강의를 듣지 않고는 도저히 임용고시를 준비할 수 없는 구조였다. 3년간 교육대학교에서 배운 것이 임용고시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연초 한국사 3급 이상을 따기 위해 한국사 공부도 한다. 초등임용고시를 치를 수 있는 기준이 교육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여받는 2급 정교사 자격증과 함께 한국사 3급 이상의 자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2013년도에 교육대학교 4학년이었다. 당시에 임용고시는 1차, 2차 시험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1차는 필답고사와 논술고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2차는 그로부터 약 2달 뒤에 실시되었는데 지도안 작성(지역에 따라 영어 수업 지도안을 추가로 작성하는 곳도 있다.), 심층 면접, 영어 수업시연, 일반 수업시연으로 3일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피를 말리는 시험이었다고 생각한다. 

 

 1차 시험은 필답고사로서 교육과정 총론, 해설서, 각론의 내용이 나온다. 총론이란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거대한 토대들을 의미한다. 총론에는 국가 수준에서 지정되는 각 교과의 이론적 배경, 성격, 목표, 핵심성취기준 등이 포함된다. 각 교과라 함은 국어, 도덕, 수학,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실과, 영어, 창의적 체험활동을 위시한 11개의 교과를 포괄한다. 해설서는 총론을 해설한 내용이다. 법적인 용어와 학문적 용어가 난무하는(?) 총론을 국어책 읽듯이 독파하기란 어렵다. 이를 도와주는 책이 해설서다. 해설서는 각 교과별로 나누어서 기술된 책이다. 각론을 우리가 알고 있는 '교과서' 내용을 의미한다. 각론은 교사가 사용하는 '지도서' 내용과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 내용을 포괄한다. 따라서 내용 측면만 따지자면 각론이 가장 많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 교과의 지도서와 교과서 내용을 포괄한다고 생각해보라. 필자도 임용고시 1년 준비하며 각론을 처음부터 끝까지는 다 보지 못했을 정도다. 위에 열거한 내용들이 필답고사로 2교시 동안 진행된다. 3교시는 교직논술 시험이다. 교직논술은 그 주제와 범위가 광범위하다. 교육과 관련한 모든 내용이 논술의 범위다. 물론 실무 능력과 교사 직무 능력을 고려하여 교실 현장과 관련된 내용이 주로 많이 다루어진다. 물론 그 속에는 광범위한 교육 이론들과, 교수학습 방법론 등이 포함된다. 

 

 2차 시험은 실기평가다. 실기평가에는 심층 면접, 영어 면접, 일반 수업 시연, 영어 수업 시연, 지도안 작성 등으로 구성된다. 지역에 따라 영어 지도안을 추가로 작성하는 곳도 있다. 심층 면접은 심사위원 앞에서 자신의 교직관, 교육철학, 문제 해결 능력 등을 구술로 실시하면 된다. 지도안 작성은 지정된 교과와 상황 등이 제시되고 그에 맞는 수업 지도안을 작성하면 된다. 일반 수업 시연은 심사위원들 앞에서 지정된 교과와 상황 등이 제시되면 모든 것을 고려하여 15~20분 수업을 허공에다가(?) 하면 된다. 영어 수업도 마찬가지다. 3일간 진행되는 터라 긴장감과 피로도가 많이 누적되었던 기억이 있다.

 

 임용고시 2차까지 끝나면 약 2주 뒤에 결과가 발표된다. 아쉬운 점은 1차, 2차 모두 시험지를 확인할 방도가 없다. 내가 뭘 틀렸는지, 혹시라도 탈락한다면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발표가 나면 성적순으로 각 지자체의 상황에 맞게 발령이 난다. 보통 성적순으로 3월, 5월, 9월 발령이 난다. 물론 휴직, 퇴직 등으로 발령이 지체되거나 앞당겨질 수도 있다. 

 

 1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모처럼 5명의 온 가족이 다 모였던 날. 아침식사 도중 시험 결과를 확인했다. 합격이었다.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기뻤다, 몇 월 발령이 날지 기대하는 마음도 들었다. 졸업식에 가벼운 걸음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감사히 대학교 마지막(?) 방학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교육대학교 4년이 마무리되었다. 교사의 꿈을 꾸며 교육대학교에 들어왔다기보다는, 교육대학교 4년의 연단을 거쳐 '교사'로 만들어져서 졸업을 했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뿌듯함과 보람이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교사,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2)-교육대학교] 편을 마친다. 다음 포스팅은 [교사,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3)-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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