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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바라보는 교육복지대상자]'배려'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나는 어려서부터 또래들보다 체구가 다소 작았다. 어렸을 때에 작은 체구와 까만 피부는 나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제법 통통해서 '처키'라는 별명도 있었고 '탄두부'라는 별명도 있었다. 모범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먼, 그저 축구와 방방 타기를 좋아하는 바닷가 마을 소년이었다. 마음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을 작아지게 만드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다. 마음을 작아지게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나의 가족사다. 가족사에 관한 지분은 좀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이야기하자면 꽤 길다. 북한의 함흥까지 가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설하고자 한다. 그냥 으레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조손가정'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이자 '소년소녀가장'으로 분류된 한 아이였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편견이야 다양하겠지만 위에 열거한 타이틀만 봐도 대충 어떤 분위기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는지 짐작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작아지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학교'에서 발생한 '배려'과 관련한 일들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학교에서는 너무나 선한 의도로 '불쌍한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나누어 주었다. 무려 '컴퓨터'(팬티엄4로 기억난다.)도 지원해주었고, 쌀과 우유도 지급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감사해도 모자랄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모순적이게도 이러한 '배려'들로 인해 마음이 작아졌었다. 좋은 의도로 준 건 알겠지만 그게 친구들에게는 '불쌍한 애'라는 낙인을 제대로 찍어주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학생에게 멸균우유를 주는 것은 너무나 고마웠던 일이다. 하지만 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여름날 책상 크기만 한 멸균우유를 집까지 들고 가게 만든 것은 너무나 가혹했다고 생각한다. 가난을 '징벌'로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단지 우유가 크고 무거워서 가혹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수십수백 명이 하교하는 시간에 누가 봐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만 들고 가야만 했던 책상만 한 우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냥 그 현실이 부끄러웠다. 작은 아이에게 주어진 우유는 따뜻한 나눔의 결과가 아니라 십자가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제법 철없던 아이들은 왜 너만 우유를 주냐며 부럽다고 이야기했다. 제법 철들었던 아이들은 부럽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손사래를 치며 그만하라고 다그쳤다. 그리고 위아래로 나를 조심스레 훑었다.

 하루는 학교에서 쌀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kg짜리 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담임 선생님이 조금 난감해하시며 오늘 학교 끝나고 집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그 때 선생님 차를 처음으로 얻어 타봤다. 그리고 내가 살던 주공아파트에 도착했었다. 당시에도 좀 오래되었던 복도식 아파트를 둘이서 쌀을 들고 낑낑대며 걸어갔다. 무거운 문이 열리자 어둑어둑한 거실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선생님은 공손하게 인사하시며 학교에서 쌀 지원이 있어서 급하게 들렀다고 하셨다. 공적인 만남이 사적으로 바뀌는 변곡점에서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발견한다. 수고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함이 앞섰고, 마음 짠하게 여기셨던 것들도 여기에 아직 내 마음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컴퓨터, 우유, 쌀 등 너무나 많은 복지 혜택을 누렸지만 그 과정에서 피치못하게(?) 받은 상처들도 있었다. 이따금씩 가난한 아이들 1~2명만 따로 불러서 행정실에 다녀와야 했던 일들이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싫었다. 맞다. 여름날에 우유를 짊어지고 가던 그 '불쌍한' 아이들만 행정실에 쪼르르 내려갔던 것이다. 애써 모른 척 앉아있지만 교실에 있던 친구들은 쟤네들이 왜 내려가는지는 대충 짐작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중학생 때는 각종 고지서 받는 날이 참 부끄러웠다. 급식비를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아이들은 고지서가 아예 나가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번호 순서대로 받는데 나만 빠지니까 친구들이 물어보았다. 왜 고지서를 안받냐고. 유독 친절한 한 친구는 선생님이 깜빡하신 줄 알고 이의 신청도 했다. 선생님, OO 꺼 빼먹으신 것 같아요. 선생님도 많이 난감하셨을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일부러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싫어, 미운 애들은 안 줄 거야~. 의아하다는 눈빛도 있었고, 뭔지 대충 눈치챈 눈빛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 다치지 않을까 배려해주신 모든 선생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까맣고 작았던 나를 지원해주었던 그 학교에서 이제는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기 초 학급 아이들의 명단을 쭉 둘러본다. '교육복지대상자'로 분류된 아이들은 학기 초에 이미 다 받아볼 수 있다. 사유도 다양하다. 다문화 가정, 편부모 가정, 조손 가정, 소년소녀가장 가정, 의료비 수급자, 교육비 수급자, 주거비 수급자, 차상위 소득 등등. 소득분위에 따라 복지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교육 당국은 노력하고 있다. 내가 '교육복지대상자' 아이들을 대할 때 유독 민감해지는 이유는 내가 바로 그 대상자였기 때문이다. 가끔씩 해당 아이들에게만 가정통신문이 나올 때가 있다. 그리고 교육복지실로 해당되는 아이들만 보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고민이 많아진다. 왜냐면 '배려'라고 생각했던 절차들이 결국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어렸을 때의 나처럼 아이들 마음이 작아지지 않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럴 때 나는 '소음'을 활용한다. 아이들은 그 어떤 존재보다 '소음'을 많이 발생시킨다. 중간놀이 시간에 그저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질문 몇 번 던지면 그쪽으로 시선이 확 쏠린다. 와 그거 재밌겠다. 그거 어떻게 하니? 우리 반에서 누가 제일 잘하니? 그리고 홀연히 반대쪽 구석으로 간다. 보드게임을 하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누가 이기고 있니? 이긴 사람은 선생님이랑 학교 끝나고 대결 한판 하는 거야~. 교실은 아이들 웃음소리와 소음으로 가득해진다. 내용을 전달할 기회는 이 때다. 그때 교육복지에 해당되는 친구들을 슬쩍슬쩍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부른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고 최대한 간결하게 내용만 안내하고 무심하게 업무를 한다. 정 어려울 경우 학교 끝나는 집에 가려는 그 '복잡한' 상황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아이들에게 안내하려고 한다.

 

 20여 년 전에는 교육복지대상자의 기준이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그냥 딱 봤을 때 '가난한' 아이들 대부분이 교육복지대상자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기준이 달라졌다. 겉모습으로는 이 학생이 교육복지대상자인지 아닌지 거의 판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문화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학생 부모의 직업이나 경제적 수준도 1년 이 지나도록 사적 친분이 생기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알 수가 없도록 규정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교육복지대상자의 기준도 다양해졌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알고 싶지는 않았으나 우연한 계기나 지역 사회의 지인을 통해 교육복지대상자가 실제로 거주하는 아파트나 차량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도저히 교육복지대상자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복지 사각지대가 아니라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히 이용하는 형태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국세청이나 수사 기관에 공식적으로 의뢰하기도 난감한 입장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견제와 선한 감시가 필요한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학교와 사회는 여전히 교육복지에 대한 숙제가 있다. 그중 '배려'가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는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다루는 것이며, 사람 중에서도 보호와 보살핌이 필요한 '학생'에 대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로 시작된 '배려'가 선한 '흔적'으로 남고,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선한 '열매'를 맺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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