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몰라요! 이해가 아닌, 인정의 눈으로만 보이는 세상.[구덩이/글:다니카와 슌타로, 그림:와다 마코토, 옮김:김숙]
대한민국의 서쪽의 어느 아름다운 곳에서 첫 발령을 받았다. 그 곳에서 2년 조금 넘게 초등교사로 근무하고 극적으로 고향에 돌아와 다시 적응하며 근무를 한 지 1년이 넘어갈 무렵이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익숙한 것도 있었지만, 교직에서는 여전히 적응하고 알아 갈 것이 천지 개락(?)이었다. 지역 인프라에 관해서는 주변 선생님들 보다야 아는 것과 경험한 것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고 생각했다. 이 곳에서 나고 자랐고 부모님이 이 곳에 30여 년을 넘게 사셨고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직 사회는 워낙 좁다 보니 이 지역에서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는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했을 때는 최소한 교직 내에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편에 속했다. 같거나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의 고충이나 기쁨을 나누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경험의 공유는 사람을 외롭지 않게 해줄 수 있다. 둘째, 간접 경험을 하게 해 주어서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실수나 실패의 확률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셋째,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공고히 해주기에 심리적 안정을 주기도 한다.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단 내가 경험한 바로 '교직'은 '경험'이 깡패다. 어감이 그리 친절하진 않지만 교직은 일단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다. 교사는 평생을 놓고 봤을 때 최소 수백에서 수천 명과 공적인 관계를 맺으며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나아가 '교육'이라는 독특한 특성으로인해 공적인 관계가 사적인 관계로까지 나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경험'이라는 데이터는 사람을 분별하고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제다. 공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다소 공식적이지는 않고 느슨관 관계의 어떤 모임이나 조직은 이러한 경험을 풍부하게 공유하게 해 준다는 데에 그 특장점이 있다.
따라서 나는 고향에서의 근무가 1년 정도 넘어갈 무렵 학교 밖을 벗어나 어떤 '모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찾아보게 되었다. 우연한 계기로 아는 후배 선생님을 통해 한 모임을 추천 받았다. 그곳에서 '독서 나눔'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데 웬만한 직무 연수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함께 하시는 선생님들이 좋았다. 내가 속한 지역과 주변 지역에서 적게는 3~5년, 많게는 20여 년이 넘게 교직에 계셨던 분들이었고 학교급도 다양하였다. 초등학교에서만 근무하는 나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주제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어 감사했다. 그리고 독서 모임의 시작은 가볍게 하자는 취지로 '그림책'을 한 선생님으로부터 추천받아 본격적으로 독서 나눔을 시작하게 되었다.
'구덩이'라는 책을 처음 보고 일단 부담감이 없을 것 같은 비주얼이 가장 좋았다.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두께가 1cm 정도도 안 되는 얇은 그림책을 만져본 탓이었다. 겉표지는 갈색 바탕에 파란 구멍이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파란 구멍에는 하얀색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가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지역 방송국에서 라디오 DJ를 하셨던 선생님이 계셔서 그 분께서 그림책을 천천히 읽어주셨다.
어느 한적한 휴일, '히로'라는 아이는 집 앞에 구덩이를 파기로 한다. 왜 구덩이를 파는지, 이 아이는 어떤 아이인지에 대한 배경 설명은 없다. 그냥 아이의 행동과 시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구덩이를 열심히 파는 히로에게 엄마가 다가와 묻는다.
"뭐 해?"
히로는 대답한다.
"구덩이 파."
동생 유키가 다가와 묻는다.
"나도 파고 싶은데."
히로가 대답한다.
"안 돼."
옆 집 슈지가 와서 묻는다.
"뭐 할 거야, 이 구덩이."
"글쎄."
이 밖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히로에게 다가와 묻고 히로가 답하는 방식의 대화가 이어진다. 그리고 애벌레를 발견한다. 처음 그림책을 읽었을 때에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이게 무슨 전개 방식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 살짝 기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선생님들과의 나눔을 하며 나의 선입견과 편건이 무참히 깨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공문서는 다양한 절차를 거쳐 작성되며,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담당자를 통해 시행된다. 이러한 것들이 총체적으로 모여 '공무'가 발생한다. 기획, 시행, 보고, 평가, 반영. 다시 기획, 시행, 보고, 평가. 중간중간 품의, 혹은 기관 협조, 공람 등.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고 결과가 있다. 그러나 교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의 행동에는 가끔 '목적'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왜'라는 질문이 없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아이들을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려 했던 어른들의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이상한 아이들이 '결정'될 뿐이다. 나 또한 그러한 우를 얼마나 많이 범했는가. 아이들은 '인정'의 대상이다. 구덩이에서 나오는 '히로'의 모습에서 우리는 '목적'이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런 것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어른의 시각으로 이 책을 감상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그저 어느 한적한 휴일 삽이 있었고, 팔 수 있을 법한 땅이 있었고, 땅을 팔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가운데 '애벌레'를 발견하게 된다.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누는 모든 과정은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과도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짤막한 대화였지만 그 속에서 히로와 인물과의 관계를 추측하는 관점도 있었다. 구덩이의 겉표지가 구덩이 속에서 히로가 바라본 파아란 '하늘'이었다는 것도 나눔 속에서 발견되었다. 히로가 에벌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추측해보는 재미있는 나눔도 했다. 겉표지에 있었던 하얗게 팔랑거리던 나비는 결국, 애벌레가 자신의 세상을 깨고 나왔던 것이 아닐까라며 예리하게 추론하였던 것도 나눔의 과정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냥 나 혼자 읽었다면 20초만에 휙 읽고 넘어갔을 법한 그림책이 나눔을 통해 '반성'과 '자유', '관계', 나아가 편견과 선입견의 탈피라는 매우 고등한 사고까지 나아가게 해 주었다.
구덩이는 어렸을 적 나의 모습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 곳에 길이 있었으니까, 거기에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으니까 했던 많은 사건 사고(?)도 기억나게 해 주었다. 나아가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나와 가까웠던 어른들의 '인정'이 참 많았었다는 것도 새로 깨닫게 되었다. 또한 현재의 나에게도 나만의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구덩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구덩이'는 나만의 것이기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평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구덩이'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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