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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미완성과, 찬란한 미성숙. 그러한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학교와 친구] 꼴뚜기/창비문학

각 시.도별로 상이하지만 우리나라의 정교사는 3년차가 되면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받게 된다. 1급 정교사는 공공기관인 학교 내에서 공식적으로 '부장'의 직책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수 이후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시험 성적이 아직까지는(?) 승진 점수에 반영이 되는 추세다. 1급 정교사는 상징적으로 초임교사의 티를 벗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내가 속한 곳에서는 겨울 연수가 최초로 생겼는데, 40여명의 교사들이 모여 연수를 받게 되었다. 약 2주간 비합숙으로 진행되었으며 시간은 의외로 타이트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불과 몇 년 전까지 흉악하게(?) 이루어지던 조별 과제와 조별 발표 등이 최소화되었고 외부 체험 학습 등도 포함되어서 비교적 실효성있게 연수가 구성되어 있었다. 연수 중반쯤에 이르렀을 때에 국어과 연수로서 '독서 교육'관련 강의가 있었다. 이 강의는 선행 과제가 있었는데 바로 [꼴뚜기]라는 책을 읽어오는 것이었다. 곁표지는 샛노랗고, 페이지 수는150페이지 정도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창작 소설이었다. 그렇게 꼴뚜기를 미리 읽고 1급 정교사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최근 교육의 동향 중 한 가지 갈래가 무엇이냐면, '놀이 교육'이다. '놀이'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마주하는 '학습'이라는 딱딱한 주제로부터오는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또한 아동발달의 특성상 초등학생의 집단 학습에서 ‘우연’의 요소는 의미심장한 위치를 가진다. 나아가 간단한 규칙을 기준으로 경쟁과 도전 등의 요소를 포함한 '놀이'는 매우 효과적인 학습 방법이다. 이 놀이에서 기존의 '학습'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요소가 하나 있는데, '우연'의 요소이다. 놀이 학습에서 '우연'이라는 요소는 눈에 띄에 강조되어서는 좋지 않지만, 공동체 내에서 '실력'이라는 체급차이를 극복하게 해주는 중요한 주제다. 우리가 흔히 '운'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 놀이학습에서의 '우연'의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들은 아이들에게 '요령'을 가르치고 '일확천금'을 은연중에 가르치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의 현장에서 겪는 수준별 학습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를 체감한다면 결코 '우연'의 요소가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연'의 요소가 교육 활동에 주는 효과는
첫째로 흥미를 유발하여 일단 '학습'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일단 발을 들여놓고, 흥미를 갖게 된다면 최소한 교사의 말을 들을 귀가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학습의 체급차이를 극복하게 해주는 요소로서 학생으로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한다. 교실 내에서의 발견되는 학생의 수준별 학습량의 차이는 현행 교육개혁의 노력과는 별개로 그 폭이 굉장하다. 그러나 놀이 학습 중 '우연'의 요소는 일시적일지라도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게 한다. 따라서 학습 부진학생과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도 작은 '승리'의 기쁨을 효과적으로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셋째는 공동체의 유대 관계를 강화시킨다. ‘우연’의 요소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암묵적 합의'가 전제되어야만 허용된다. 이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비예측적 상황을 대비하게 해준다. 그리고 누구라도 '행운'을 얻게 될 수 있거나, '불운'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유대감을 확장시키게 해줌으로서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유대 관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1급 정교사 연수 중 '꼴뚜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기대 반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수강을 시작한 것 같았다. 강의를 해주신 강사 선생님께서는 멀리 있지 않은 곳에서 현직 초등교사로 재직 중이던 분이셨다. 그리고 각종 서적 출판과 독서 관련 모임에서 오랜 기간 몸담아 오셨으며 내공이 상당한 분이셨다. 선생님께서는 '놀이'학습과 '독서 교육'의 융합을 위한 교수.학습 방법론과 교육 현장에서의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강의를 준비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강의가 진행될수록 선생님들의 불만이 많아졌다. 골든벨과 같은 퀴즈 형식으로 강의가 일부 진행되었는데 뽑기를 잘한다고 점수를 더 가져가는 팀이 생기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일부 선생님들의 주장이 있었다. 맞다. 강의하시는 선생님께서는 '놀이'학습 중 '우연'의 요소를 이 곳 연수에 적용하여 진행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점수에 민감한 선생님들이 몇 몇 있었고 이렇게 '운'이나 '우연', '비예측성'에 관한 요소가 정교사 연수와는 합치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절반이 넘는 선생님들이 이 의견에 동의해 주셨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정교사 1급 연수의 본질이 무엇인가? 교사의 전문성을 향상시키며, 교육 동향과 교육 당국의 문제를 공유함으로서 보다 높은 수준의 교사를 확정시키는 것이 정교사 1급 연수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교사의 전문성이 무엇으로 측정되는가? 학생 교육을 목적으로한 모든 결과로 측정된다. 물론 교육이라는 주제를 정량화하거나 가시적으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교육 동향을 전수 받고, 이것을 몸소 체험한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의 차이는 교실 현장에서 분명히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우연'의 요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부터 학습 격차라는 사회의 매질을 받으며 꾸역꾸역 교실에 나오는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런 학생의 입장이 되어 '놀이' 학습의 참맛을 경험한 교사들은 '우연'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1급 정교사 연수라고 다를 바 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전문성을 위해서 우리는 해당 분야에서 얼만큼의 경험치와 능력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교사의 전문성이 학생 교육이라면, 최소한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놀이'학습의 진가를 보여준 강사 선생님에게 나는 감사하면 감사했지 집단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온당하지 못하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연에 의한 점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고 노력한만큼의 결과는 충분히 보상될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사 선생님께서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그 전까지 진행된 고리타분한 평가 방식으로 점수를 책정하신다고 하였다. 참 씁쓸했다. 과정중심 평가를 주창하는 교육 당국의 주체들이 결국 과거의 일제식 평가를 고집하여 새로운 경향에 대한 결과를 한 과목에서라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갈 길이 멀다는 반증이리라.


꼴뚜기는 초등학교 5학년 친구들의 이야기다. 우연히 얻게 된 별명 '꼴뚜기'가 학교 내의 공동체, 즉 학급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다니며 마치 폭탄 돌리기를 하듯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을 엮어서 쓴 책이다. '우연'이라는 요소는 이렇듯 학교에서 자주 발생하는 요소이다. 우연히 음악 시간에 노래를 부르다가, 우연히 급식을 먹다가, 우연히 받아쓰기를 하다가 '꼴뚜기'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이 책에는 평화롭고 따뜻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책 밖에서 '꼴뚜기'를 읽는 우리들과, 책 속의 인물들에게 '꼴뚜기'라는 의미는 크기와 깊이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에게 별 거 아닌 주제가 아이들에겐 인생을 걸 정도의 의미로 다가가는 주제임을 깨달은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다. 체험학습에 가는 자리를 선정하는 방법에서, 한 달에 한번 자리를 바꾸는 과정에서, 과학 시간에 실험 도구 한 번 더 만지는 것에서, 중간 놀이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등등 나는 학교에서 발생하는 굉장히 다양한 '꼴뚜기'를 경험하였다.
이 책에서는 낙인효과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 낙인효과를 필연적으로 공유하는 하나의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낙인효과를 생성할 때의 파급력이 외부의 압력에 의한 효과보다 얼마나 강력한지를 단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초등학생의 이성교제에 관한 깜찍한 발상도 알려준다. 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애틋한 설렘이 있다. 또한 어른이 된 듯한 착각 속에서도 여전히 몸과 마음의 성장이 초래하는 자아의 혼란 등을 재치있게 그려내었다.


학교 현장에서는 '1학기 1권 읽기' 등의 전체 독서 활동도 증가하는 추세다. 추세에 맞추어 우리 학급에서는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꼴뚜기' 책을 선정하여 다함께 읽고 국어과, 도덕과 등의 교과와 연계하여 수업을 한 경우가 있었다. 스마트폰과 각종 IT기기의 보급으로인해 요즘 아이들이 '읽기'가 부족하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실제로 해가 갈수록 아이들은 글을 잘 '못' 읽는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코로나19의 여파가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킨 듯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책을 한 권 정해 돌아가며 육성으로 책을 읽는 활동은 '읽기'와 '듣기'등의 기초 언어 기능 향상에 탁월한 효과를 준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학습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읽기 행위의 '비교'가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된다. 이 때 아이들은 내가 글을 잘 읽는 편에 속하는지, 조금 더 노력해야하는지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실제로 잠시만 멈춰서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하루 동안에 얼만큼이나 목소리 내어 글을 읽는지 돌아보면 될 것이다. 꼴뚜기를 통해 다양한 딜레마 상황에서 '도덕적 가치 판단 활동'의 일환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언어 사용, 따돌림, 이성교제, 거짓말 등등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볼 내용이 정말 많다. 국어과에서 강조하는 구조적 파악하며 읽기, 핵심 요약하기, 연극 활동 등과도 연계할 수 있으니 '책'이 주는 유익성은 그저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특유의 평화로움과 어린 시절의 교실 공기를 느껴보고 싶은가? 학업 스트레스와 교우 관계에서 발생하는 오늘날 아이들의 어려움과 고난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꼴뚜기' 책을 과감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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