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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식구 될 준비하기. 태명, 태교, 임신. 출산 정보 익히기
어느 날 아내가 아침부터 자신의 옆구리와 허벅지, 팔 등을 마구 긁어댔다. 아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자기 몸을 긁는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처음에는 목욕탕에 하도 안 가서 그러나 싶었다. 그러나 임신 초기 증상이었다는 것을 1달이나 지나서 알게 되었다.
뱃속의 생명을 그냥 '아기'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남들 다 만드는 태명인데 우리라고 못할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명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그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 가장 컸다. 튼튼하게 자라라고 '튼튼이'라는 태명을 붙여주었다.
어느새 아내의 임신 소식은 양가에서 최고의 화두가 되었다. 남자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서로 맞춰보겠다고 난리였고, 태명, 태몽, 이름에 대해서도 벌써 궁금해했다.
아내는 원래 요가학원을 다녔었다. 3년 정도 다니며 나름대로 꾸준하게 운동을 했었다. 임신 초기를 제외하고는 산부인과 원장님께서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운동을 어느 정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내와 나는 동네 산책을 하는 것으로 일단 운동을 퉁(?) 치기로 했다.
아내는 음악을 본업으로 삼는 프리랜서다. 따라서 태교라는 게 딱히 필요 없을 정도였다. 출산 1달 전까지는 본업에서 손을 떼지 않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뱃속의 아이는 일주일에 3~4회는 반강제적으로 다양한 현악기와 클래식에 노출되게 되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임신 3개월 차가 되었을 무렵에 나는 서점에 가서 아동용 책 코너를 갔다. 일단 간단하게 시작하고자 어린 왕자, 허클베리핀의 모험 이 2개의 책을 사서 밤마다 읽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아는 지인분께서 선물해주신 '태아 축복 기도문'이라는 책을 하루에 1번 정도 읽어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내 앞에서 동화를 읽는다는 것이 영 어색하기만 했다. 동화를 읽어줄 때에 다양한 어조와 다양한 빠르기, 높낮이 등으로 제법 다양한 자극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들었다. 물론 내가 잘 해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면 꼭 동화나 책, 성경 구절 등을 읽어주곤 하였다.
임신한 상태였지만 우리는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우리는 임신 후의 모든 데이트를 태교 여행이라고 불렀다. 근처에 뷰 좋은 카페, 서울 나들이, 해변가 산책, 지역에 조성된 수목원, 그리고 뮤지컬도 한 편 봤고 파이프오르간 연주회도 갔었다. 우리 사는 지역에 대차게 눈이 내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눈길을 헤치며 동네 제설(?)도 귀엽게 하곤 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벚꽃 나들이도 다녔다. 아내의 배가 제법 불러오기 시작했고 거동이 불편함은 물론이거니와 임부복이 늘어났다.
임신 4개월 차가 되었을 무렵 성별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양가 어머님들은 '남자아이'라는 강력한 확신이 있었다. 태몽과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우리도 아이 이름을 정할 때 남자아이 이름부터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산부인과에서는 '여자 아이'일 것 같다고 했다. 정확하게 남자다 여자다는 말을 못 해주는 것 같았다. 약간 돌려서 말씀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내는 한 3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망한 것은 아닌데, 뭔가 반전 영화 같다고 했다. 당연히 남자아이일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나에게 아기가 남자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는 사실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성별을 알게 되어서 이제 다양한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 보다 확실하고 명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친한 친구들은 나중에 '딸'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좋아했다. 동메달 땄으니 이제 은메달 금메달에도 도전하라고 했다. 딸이 1 명 늘 때마다 메달의 색이 바뀐다는 뜻으로 딸을 그만큼 선호한다는 말이었다.
출산 2달여를 앞두고는 본격적으로 아기 맞이 집안 세팅을 하였다. 성인 2명이서 생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곳이었지만 아이 1명이 들어온다고 물건을 이것저것 들여놓다 보니 집안이 꽉 차게 느껴졌다. 카시트, 유모차, 아기 침대, 여기저기서 선물 보내주신 아기 옷, 유축 용품, 젖 병류, 젖병 소독기, 장난감, 아기 수건, 속싸개, 겉싸개, 바운서(흔들의자), 바닥용 매트, 기저귀, 분유, 아기용 책, 체온계, 온습도계... 아기 있는 집은 꼭 건조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저렴한 가격에 가성비 좋은 건조기도 장만했다. 그밖에 각 가정 상황에 맞게, 육아 스타일에 맞게 물품은 천차만별이었다.
출산 정보는 지인들과 책, 유튜브 등을 통해서 습득했다. 물론 출산하고 나서 든 생각이지만 아무리 준비해도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검진도 가고, 초음파로 튼튼이의 모습도 보았다. 하리보 젤리 곰처럼 너무나도 귀엽고 아기자기했던 아기가 이제는 눈에 보일 정도로 엄마 배를 빵빵 찬다. 자기 전에 아이와 교감하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배 일부를 손으로 살짝 누르면 몇 초 있다가 툭 하고 안에서 찬다. 그리고 조금 더 옆에다가 손으로 살짝 누르면 다시 아기도 옆 부분을 툭 하고 찼다. 처음에는 우연이겠지 하고 몇 번 거듭하다 보니 아이가 바깥세상과 교감하고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내는 계단을 오르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옷을 갈아입다가 보면 배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하게 커졌다. 정말 대단한 광경이었다. 10개월을 아이와 호흡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임신 후 부쩍 더위를 많이 탔다. 임신 기간 중 6개월 정도가 겨울이었는데 춥다고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만삭이 되어 이제 매주 산부인과에 가게 되었다. 튼튼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얼굴을 보기가 영 어려웠다. 이제 산후 조리원도 슬슬 신청해야 하고 산후 돌보미, 각종 서류 작업들도 미리 알아두면 좋고, 각자의 일터에서 출산 휴가와 복귀 관련하여 인수인계도 준비해 놓아야 했다. 정말로 정신없는 기간이었다.
그렇게 출산 예정일 3일 전 평소와 다름없던 새벽 아내가 일찍 일어났다. 며칠 전 아래에 피가 살짝 맺혔었다고 했는데 생리통 같은 통증이 있다고 했다. 찾아보니 출산 며칠 전 혹은 몇 주 전 '가진통'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어렴풋이 아내도 '가진통'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했다. 그렇게 출근을 했는데 1교시도 시작하기 전에 장모님께 연락이 왔다. 종달새가 방금 '분만실'에 들어갔다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뭐부터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미친 듯이 관리자 결재를 맡고 휴가를 내고 인수인계를 전광석화처럼 하고 산부인과로 날아갔다. 그 와중에 2일 전에 미리 싸놓은 산후조리원 물품이 있는 캐리어도 집에서 챙겨 갔다.
그렇게 그날 나의 아내는 '엄마'가 되었다. 나는 '아빠'가 되었다. 우리는 '부모'가 되었다.
다음 포스팅에는 '산후조리원', '산후도우미', '모자동실' 등 출산과 관련된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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