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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앗
겨자씨앗은 많은 종류의 씨 중에서도 크기가 매우 작은 씨앗에 속한다. 그러나 그 작은 씨앗도 나중에 자라 새와 곤충의 훌륭한 휴식처가 된다. 나는 나와 함께하는 학생들을 이 작은 겨자씨앗에 비유한다. 누군가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고 유익을 줄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초등교사로 근무한 지 4년차, 내가 졸업한 나의 모교로 발령을 받았다. 도간내신을 통해 타지 생활을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학교생활. 그리고 처음으로 6학년 학생들을 맡아 가르치게 되었다. 이것이 2018년 나의 시작이다.
2018년 3월 2일 금요일, 아직 추위가 떨어지지 않은 교실에서 25명의 학생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초등학교라 그런지 익숙한 느낌과 동시에 낯선 느낌이 묘하게 섞였다. 창 밖 풍경은 내가 어렸을 적 경험했던 모습, 바다를 품은 속초의 풍광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 온 지난 학기들을 되돌아보고 내가 경험했던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과 가장 살맛났던 순간들을 나누고자 한다.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실수를 많이 한 사람을 ‘전문가’라 부른다고. 그렇기에 나 또한 교육 전문가로서 올해 내가 겪었던 실수와 실패, 그리고 때로는 짜릿하고 감사했던 감동의 순간들을 4가지로 소개하고자 한다.
[6모둠의 불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4명의 친구가 한 모둠이 되었다. 학기 초에 모둠 활동을 하거나 짝 활동을 할 때에만 해도 큰 문제가 없고 오히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3월 둘째 주가 지나갈 무렵 아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영어전담교과 시간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서로 말다툼을 하기 시작하였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서로 말장난을 주고받다가 여학생들 2명이 한 남학생의 샤프심 통을 서랍에 숨기며 일이 커졌다. 남학생은 화를 참지 못하고 여학생의 팔뚝을 때렸고 여학생도 남학생의 등짝을 세게 때렸다. 그 날 학생들은 책상을 서로 멀찍이 떨어뜨리고는 수업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 상담을 하였는데 20분이 넘는 상담을 진행하며 서로의 사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먼저인가,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먼저인가 혹은 학칙을 제시하는 것이 먼저인가가 내 마음을 어렵게 했다. 참으로 난감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타협점을 찾은 것이 평소에는 책상을 떨어뜨려 수업을 하고 모둠 활동 시에만 잠시 붙여서 활동을 한다는 것. 서로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좋으니 일단은 말을 하지 말고 지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한 후 결론 맺었다. 상담 후반부에 가서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 서로 사과를 구하고 이번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다음 날 과학 시간에 지구본 나라 찾기 활동을 실시하였는데 그 모둠이 1등을 했다. 서로 지구본의 구역을 나누고 제시되는 나라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서로 신나게 찾는 모습이었다. 3월 초 서로 눈을 치켜뜨며 2:2로 나뉘어 싸우던 그 6모둠이 모습이 나에겐 아직까지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 유익한 계기였다. 모둠을 형성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학생간의 성향과 교우관계 등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설악산에서의 작은 천국]
6월 초 우리학교 6학년 학생들은 1학기 체험학습으로 설악산을 가게 되었다. 날씨가 쾌청하고 학생들도 매우 들떠있었다. 설악산에 도착하여 단체 사진을 찍고 고대하면 케이블카를 탔다. 울산바위와 설악산의 경치를 보았다. 케이블카 안에서는 일부 무서워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즐겁게 경치를 구경하며 역사 이야기도 들었다. 깎아지는 산을 단숨에 올라 권금성에 도착하였다. 위험한 부분이 있었지만 통제를 철저히 하며 설악의 풍광을 마음에 담았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는 신흥사라는 절과 그 앞의 개울에 가게 되었다. 울창하고 고요한 산림 속 몇 채의 절과 산책로가 있었고, 넓은 풀 숲 가운데에 족히 30명은 앉을 수 있는 둥근 벤치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 곳에 잠시 짐을 풀고 휴식하였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개울로 달려들었다. 일부는 돌다리를 건너 자연 속 작은 생물을 관찰하였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이미 물병에 개울물을 넣어 친구들에게 뿌렸다. 그 순간은 매우 화창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교실 속에서 수업 진도 나가랴, 생활 지도 하랴, 업무 처리 하랴 볼 수 없었던 특유의 평화로움과 천사 같은 어울림들이 마음속에 담겼다. 햇살이 개울물에 부셔지고, 소담 소담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과 개울가에선 깔깔대는 아이들의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작은 천국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설악산에서 작은 천국을 경험하였다.
[자해]
여름 방학을 한 달여 앞 둔 어느 날 믿기 힘든 소식을 접했다. 보건 선생님의 업무메신저를 읽었는데 호흡이 답답해지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우리 반 여학생이 자해를 했다는 것이다. 아침에 상처를 소독하러 보건실에 들렀는데 긁히거나 놀면서 발생하기 어려운 상처여서 보건 선생님이 슬쩍 물어보았다고 한다. 집에서 자해를 했다는 것이다. 해당 학생과 중간놀이 시간에 상담을 하였다. 가정 내에서 동생을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맏이로서 느끼는 부담감, 방과 후 ‘센터’에서 동생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다른 반 친구들이 자신의 뒷담화를 한다는 소문에 의한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었다. 이 학생은 스트레스의 돌파구로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택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굳이 이런 방식이어야 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올 여름이 좀 더웠는가, 사람들 없는 곳에서 상담한답시고 옥상 문 앞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땀을 있는 대로 뺐다. 눈물도 났다. 다시는 이러지 말 것을 다짐했다. 그렇게 일단락 될 줄 알았던 자해 사건은 더 큰 바람이 되어 돌아왔다. 3주 뒤 자해를 했던 학생이 아침에 학교 화장실에서 또 자해를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학생이 자신을 놀렸다는 것이다. 그 남학생은 단지 ‘라면과 김치는 잘 어울린다. 라고 말한 건데 자신을 사치스러운 여자로 놀렸다고 여긴 것이다. 학생과 상담을 하며 우리 학급에 3명의 학생이 추가로 자해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내 머리가 어지러웠다. 결국 그 친구들을 일일이 만나 확인해보니 1개월 전, 3주 전 등 각각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그들은 자해를 했다. 팔 전체가 엷은 칼자국으로 도배되어 있는 학생, 슬쩍 팔뚝 부분에 커터 칼자국이 그어져 있던 학생, 손톱으로 손목 부분을 찔끔찔끔 찢은 흔적이 남은 학생……. 참담하고 어이없었다. 해당 학부모님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학부모님들께 협조 요청을 드리고 전문 상담사님께도 도움을 구하여 이 일들은 방학 전날에 일단락되었다. 가정에서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제는 그런 행동은 발견되지 않는다. 아이들도 이전보다 밝게, 조금 더 건강해지 모습으로 생활 중이다. 그 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빠르게 뛴다. ‘아이들아, 너희는 누군가의 극진한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란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너를 돕고자 하는 어른들과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오레오]
10월 초 5,6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흡연예방 교육이 우리 학교 체육관에서 열렸다. 체육관에 300여명의 학생들과 교사가 들어가니 약간은 어수선해졌다. 그러나 초빙한 강사 분이 준비한 유익한 자료와 활동으로 아이들은 금방 집중하여 교육을 받았다. 흡연으로 인한 질병을 사진으로 보여주는데 나는 좀 징그럽게 보여서 거의 쳐다보지를 못했다. 그렇게 1시간에 달하는 흡연 예방 교육이 끝나고 퀴즈 대회가 시작되었다. 우리 학급은 5,6학년 전체에서 총 9개의 문제를 맞히고 예선에 통과하였다. 통과한 학급은 총 3학급. 이제 본선 문제가 나왔는데 첫 번째 대결은 ‘춤’ 위에서 언급한 ‘자해’를 두 번 했던 그 학생이 나갔다. 무대 위로 뛰쳐나가 자신 있게 대결에서 통과하였다. 두 번째 대결은 티슈 오래 불기, 자신 있게 뛰쳐나간 학생은 마찬가지로 평소에 꾸지람을 많이 받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대결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통과하였다. 세 번째 대결은 1:1로 점철되었다. 마지막 대결이고 300여명이 지켜보는 것이라 누가 나갈지 나까지도 슬슬 긴장되었다. 마지막 대결은 빨대로 풍선불기! 근데 뛰쳐나가는 학생을 보고 아차, 싶었다. 평소 조심성 없고 우리 반에서 가장 많이 지적당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너무도 큰 차이로 대결에서 이겼다. 그렇게 우리 학급은 ‘오레오’과자를 1인 1곽씩 받게 되었다. 솔직히 오레오 과자가 무슨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겠지만 나는 이 날을 굉장히 오래 기억할 것 같다. 내가 평소에 편견을 갖고 바라보았던 학생들이 나 조차도 부담스러워 할 상황에서 자신의 기치를 발휘했다는 사실과 그들의 활약으로 인해 결론적으로 우리 학급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내가 정한 기준과 편견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변화될 부분은 없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어 준 계기였다.
감동과 위로가 필요한 나눔을 더 하지 못해 아쉽다. 이것으로 나의 심장을 철렁거리게 만든 겨자씨앗의 두 가지 이야기와 행복하고 짜릿한 감동으로 이끌어 준 두 가지 겨자씨앗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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