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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ete ! (밝게 빛나라)
“아령하세여~ 허잇!”
“선생님, 안녕하쎄이요!”
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인사로 교실 안이 벌써 시끌벅적하다. 교실 내에는 활기가 가득하다. 달무티와 우노가 우리 6-4 일부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킬링타임용 보드게임이다.
“와, 7 한 장부터 시작하는 거 실화냐, 인성~”
“달무티! 앗싸 1빠, 손목 대시구연 피하지 마시구연!”
자기들 스스로 게임의 규칙도 만들고 벌칙도 정해서 게임을 한다. 깔깔대며 즐겁게 보드게임을 하는 친구들 외에 나머지 남학생들은 뛰어논다. 얼굴이 벌개져서 이마에 줄줄 땀이 흐를 정도로 열심히 운동장에서 축구를 한다.
“참 말 많아 난 괜찮아, 계속 Blah blah~”
“난 정말 달~라 달~라”
교실 뒤편 두 세 사람이면 꽉 차는 거울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아이돌 걸 그룹 안무가 한창이다. 우리 반 여학생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져 생활한다. 그들만의 묘한 균형이 있는데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게 견제와 타협을 하며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교실이 떠나가라 웃어대며 열심히 안무를 맞추는 팀이 있고 비교적 조용하게 화장품이나 연예인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팀이 있다.
“어제 올리브영에 신상 틴트 나왔는데 색감 개쩖, 채연이랑 가다가 바로 지름”
“나 다음 달 방탄 공연 티켓 예매하는데 PC방에서 나 도와줄 사람 구함~”
틱톡(짧은 개인 영상을 공유하는 SNS의 일종)에서 유행하는 국적 모를 음악에 맞춰서 서로 손가락 댄스와 정지 동작 영상을 재치 있게 만드는 친구들, 남들이 무엇을 하던 책에 폭 빠져 지내는 친구, 턱이 가슴팍에 붙은 건 아닌지 걱정 될 정도로 머리를 숙이고 그림에만 몰두하는 친구도 있다.
“바른-!”
“자세(구호 후 손뼉 박수 두 번)-!”
내가 칠판 앞에 걸어 나오는 것을 본 학생들은 마치 다른 사람보다 한 발 앞섰다는 듯이 큰 목소리를 내어 구호를 외친다. 그리고 주변을 살핀다. 떠들던 아이들도 주섬주섬 교과서를 꺼낸다. 운동장에서 놀다 온 친구들은 땀을 삐질 흘리며 조심스럽게 내 옆에 와서 물을 마시러 다녀와도 되냐고 물어본다. 몇 몇 아이들은 ‘야, O O! 조용히 하고 책 펴’라며 또래 선생님이 되어 교사인 나를 도와주기도 한다.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6학년 4반 26명의 겨자씨앗들과 함께 했던 빛나는 추억을 선생님들과 나누고자 한다.
자, 오늘은 교실의 물건을 관찰하고 상상력을 더해 도화지에 표현하는 시간입니다. 모두들 준비물 가져왔죠? 내가 물었다. 스케줄이 바쁘고 삶의 분주함으로 인해 준비물을 깜빡하고 안 가져온, 아니 못 가져온 친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 아 맞다. 색연필 안 가져왔네.
우리 반 태형이가 큰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아이들이 순간 모두 태형이를 주목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짓궂게 아유를 보내거나 비방을 보내지 않았다. 아이쿠, 우리 태형이 준비물을 못 가져왔구나. 수업의 흐름이 살짝 멈추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하려는 찰나 씩씩하고 야무진 우리 반 지유가 말했다.
“내꺼 빌려줄게 태형아”
아이들은 ‘오’하는 소리와 함께 서로 대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서 이루어진 대화라 살짝 어색하거나 자칫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재빠르게 활동을 안내하며 우리 반 학생들의 이목을 나에게로 집중시켰다. 그렇게 태형이나 지유에게 시선이 쏠리지 않게 하였다. 친구의 실수나 부족함에도 장난으로라도 야유하거나 놀리지 않았던 모습들이 그 날 참 대견하게 보였다. 잠깐의 침묵을 깬다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우리 반 지유의 적극적인 도움은 내가 봐도 정말 멋있어 보였다.
공휴일 전 날 저녁, 학부모들로부터 연락이 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보통 저녁에는 학부모들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데, 아……. 일단 좋지 않은 예감이다. 그것도 공휴일 전 날 저녁이라면 단단히 뭔가 잘못 되었거나, 학부모님이 통화 버튼을 실수로 누른 것이다. 후자이기를 바라며 부재중 통화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진경이 엄마입니다. 반 친구 은진이가 방금 전에 크게 다쳤습니다.”
반 친구들에게 인기 좋은 진경이의 어머니였다.
“예 어머니, 안녕하세요? 그런 일이 있었나요? 아이쿠 큰일이네요. 지금 은진이는 어디 있나요? 어디를 다쳤나요?”
“네 저희 아파트 근처에서 놀다가 손목 부분을 크게 다쳤습니다. 일단은 저희 집에서 응급처치를 했는데 은진이 어머니는 통 연락이 되지 않네요, 일단 선생님께 연락드렸습니다.”
은진이가 그 날 저녁 친구네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날카로운 것에 베어 다쳤던 것이다. 은진이 어머니는 직장 일이 바쁘셔서 그 상황을 모르고 계셨다. 다급하게 진경이네 집에 찾아가 은진이의 상처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응급실에서 봉합을 받아야 할 것 같았는데 그 와중에 은진 어머니께서 오셨다. 어머니도 놀라셨는지 상황 설명을 들으시고는 부리나케 은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셨다.
상황은 일단락되었는데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칠지 모르고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은진이는 다음 날 보건실에서 손목에 메디폼을 붙였다. 현재는 상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살이 돋아 건강히 생활하는 중이다. 에너지 넘치고 하고 싶은 것 많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과 지낸다는 것은 어쩔 때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선생님, 체육시간 끝나고 영철이가 운동장에서 실내화 신고 축구했어요.”
“아이쿠, 저런. 영철이 일단 교실로 오라고 말 좀 전해줄래?”
본능에만 충실한 나머지 공만 보면 그저 달려드는 우리 반 영철이가 교칙을 어겼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올라 교칙위반 사실을 나에게 전해주는 우리 반 암행어사 병권이. 영철이는 사실 자신에게 넘쳐나는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교칙을 어긴 것은 어긴 일. 땀을 줄줄 흘리며 내 앞에 영철이가 아직 골라지지 않은 숨을 내쉬며 서 있다.
“영철아, 혹시 운동장에서 축구하다왔니?”
“네, 헥 헥.”
“혹시 어떤 신발 신고 축구했니?”
“아…….실내화요.”
“아이쿠, 실내화 신고 축구했구나? 운동은 좋으나 교칙을 어겼구나.”
그래도 영철이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바로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을 선생님한테 이른 친구에게도 뭐라 하지 않는다. 영철이는 오늘 학급 환경봉사에 당첨되었다.
“자, 차 조심, 사람 조심, 길조심. 반장 인사-!”
“차려, 선생님께 인사-!”
모든 아이들이 시끌벅적 시내 가자, PC방 가자, 떠들며 나갈 때 영철이만 빗자루를 들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그 때 규현이가 게임 이야기를 하며 영철이에게 말을 건다. 자연스럽게 영철이는 빗자루 질을 하며 청소를 하고 규현이는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말한다. 규현이가 말한다.
“선생님, 저도 청소해도 돼요?”
“어? 규현이는 왜?”
“예 그냥 할 게 없어서요.
영철이는 규현이가 하는 말을 듣고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 그럼 우리 규현이가 영철이 좀 도와주자. 영철이와 규현이는 서로 정답게 교실 뒷정리를 한다. 아이들의 이러한 돌발적인 모습들이 나는 예쁘게만 보인다. 제가 안했어요, 제 거 아니에요, 제 담당 아녜요. 라고 할 수 있지만 규현이는 영철이 옆을 지켜주고 함께 일을 나누어 맡았다. 영철이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얻게 되었다. 청소 자체가 힘들겠는가.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 나와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으로 오늘 영철이는 누구보다 마음이 배부르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도 오늘 유난히 기분 좋게 배부르다.
국어 수업 중 소설 뒷이야기 상상하여 말하기 시간이었다. 그런데 점점 뒤로 갈수록 아이들이 자극적인 소재나 재미만을 추구하여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왜 그랬는지 아이들의 언행에 실망하여 큰 소리로 화를 냈다. 그렇게 아이들도 기죽고 나도 힘든 상태에서 수업을 마쳤다. 그렇게 화창한 늦여름 냉랭한 마음으로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선생님~ 혹시 죄송하지만 식사 하신 후에 책상 10개만 아이들과 같이 2층으로 옮겨주실 수 있나요? 제가 허리가 생각보다 많이 아프네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주무관님이 식사 마치신 후 내게 간곡하게 부탁하셨다. 냉기류가 흐르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 마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얘들아 혹시, 밥 먹고 선생님 좀 도와줄 사람 있을까?”
나는 무엇을 도와달라고도 미처 말하지 못했는데 질문이 끝나고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물끄러미 손을 들었다. 식사 후 급식소 앞 나무에서 나를 기다리던 모습들. 남학생 여학생 너나할 것 없이 선생님을 도와주겠다고 기다리던 그 모습들이 보였다. 내 마음에 아이들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밀려왔다. 조건도 없이 선생님의 요청에 응했던 아이들. 그저 우리 반 선생님을 도와줄 마음으로 손을 들었던 그 학생들. 작은 눈빛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소소한 일상들과 가슴 철렁했던 모든 것이 아름답게 기억된다. Lucete는 ‘밝게 빛나라’라는 라틴어다. 아이들의 삶이 밝게 빛나기를 바란다. 6학년 4반 26명의 겨자씨앗 아이들과 함께했던 모든 기억들이 앞으로도 밝게 기억되길 바라며.
Luc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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